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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날짜: 3/29/2025
기자: 임하정
김성민님을 2016년 제가 막 정토회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뉴욕 맨하탄 정토회 수행법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는 아직 정토회가 해외지부 국제지부로 나뉘기 전이고 법회가 온라인으로 바뀌기 전이었습니다. 지금은 미 서부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에 살고 계시고 모둠도 달라져서 한동안 소식을 모르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핑계로 오랜만에 즐거운 수다 캐치업 했습니다. 샌디에고에서는 자유를 만끽하고 계신다는 소식에 반가웠습니다. 자유로운 김성민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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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와의 인연
정토회는 2012년 한국에 살고 있을 당시 평소 법륜스님을 존경하시는 어머니의 소개로 SBS 힐링캠프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TV에 법륜스님 인터뷰 배경으로 나온 문경 풍경이 아름다워 바로 깨달음의 장을 신청했습니다. 그때의 감동으로 바라지장까지 일사천리로 다녀왔습니다. 그 후 일상에서 깨어있기를 실천하는 중에 태국 방콕으로 일하러 가게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콕에서는 정토회 활동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일상 속에서의 수행도 끊기게 되었습니다. 마침 2014년에 뉴욕으로 근무지가 바뀌면서 뉴욕 맨하탄 법당에서 2015년 봄에 불교대학을 시작으로 경전대학, 명상수련과 바라지장을 다녀오고 끈을 놓지 않겠다며 수행을 이어오고 있고, 현재는 LA 모둠에서 책임봉사자로 활동하고 나눔의 장도 다녀왔습니다.
2018년 맨하탄 법당 홍보 모둠활동 (맨 왼쪽이 김성민님)
뉴욕에서의 삶
저는 국제기구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해서 지원했고 경쟁에서도 뽑혀 다니게 된 직장에서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괴로움이 많아 그만두고 싶은 적이 많았습니다. 우울증도 생겼습니다. 수행법회 후 도반님들과 나누기는 답답한 마음의 숨통을 트여주었지만, 떼라피도 병행하며 우울증약도 꾸준히 복용해야할 만큼 우울증이 쉽게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2020년 뉴욕 맨하탄 법당 (맨 오른쪽이 김성민님)
누구나 선망할 만한 직장이지만 내 적성과는 안맞는 것 같았고 버겁고 괴로웠습니다. 한의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생각만 할 뿐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습니다. 특히 어렵게 들어간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엄청 반대하실 어머니와의 갈등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2012년 한국에서 참여했던 정토회 수행 프로그램 중에서 앞날을 생각하면 깜깜한 밤 같고 두렵다고 했더니 유수스님께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한치 앞도 모른다는 말씀을 들었었는데, 확실함을 중요시하는 제가 마음을 열고 현재에 깨어있어야 그로 인해 더 밝은 미래를 만든다는 이치를 경험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9년 맨하탄 법당에서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성민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맞바꾼 자유
완벽하기를 원하며 내 자신에 대한 상을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울증이라는 롤러코스터를 매달 여러번 타면서 괴로워하던 중, 2020년 코비드19라는 유행병으로 온 세상이 멈추는 듯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겪게 되면서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가르침에 힘입어 진로를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더 이상 생각만하고 있지 말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지 말고 이제 해보자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한번 결정을 내리자 신기하게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고 뒤돌아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2025년 샌디에고 근교에서 김성민님
진짜 어른
내 삶의 주인으로 살자고 결정을 내리자, 지난 12년간의 직장생활도 미련과 후회회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고, 그 감사의 마음은 그동안 괴로워했던 나를 자책하지 않고 뒤돌아설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동안 누가 시켜서 다닌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다닌 직장이었구나 정말 좋은 경험을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되니 한의학 공부를 위해 후회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결정을 이해 못할 거야 하고 어머니의 눈치를 보는 마음에서 벗어나 나를 중심에 두고 결정을 내리니 한없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은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고 내가 행복하면 어머니도 이해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고 나서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제가 진로를 바꾼것을 받아들이시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현재 제 모습을 많이 자랑스러워하십니다. 내 결정을 바로 이해해주고 줄어든 수입은 물론 4년간 공부한다는 마누라를 묵묵히 지지해준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이자리를 빌어 전하고 싶습니다. 언뜻 보면 큰 결정이었지만 지나놓고 보니 별일 아니었다고 느껴집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저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주위에 잘 쓰이겠습니다.
한의사 가운을 입은 김성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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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성민님은 자유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2024년 12월 한의대 수업을 모두 마쳤고 자격증시험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침술이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몸과 정신의 건강을 아우르는 한의학 공부가 더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인터뷰를 하며 자유롭다고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성민님에게서 내가 주인된 삶을 사는 수행자의 당당함이 느껴졌습니다.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전체적으로 상담해주실 수 있는 김성민같은 한의사 선생님께 꼭 한 번 찾아뵙고 진료받고 싶습니다.